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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의 거품 / 보리스 비앙 (L'Ecume des Jours)


    세월의 거품 (L'Écume des Jours / 보리스 비앙)

    2017. 01. 12 ~ 2017. 01. 19


    영화가 독특해서 미셸 공드리가 원작을 독특하게 해석한건가 싶었는데, 공드리가 원작 소설을 100%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었다.

    이전에 하도 이상하고 정신없는 영화들을 여러 편 봐서인지 영화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독특한 소설은 많이 보질 못해 초반에는 흥미로웠지만 갈수록 멀미가 났다. 발상은 기발하지만 작품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이따끔 일하다가 딴생각이 들 때면 의식의 흐름대로 끼적거려 놓은 메모를 읽는 느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에 대해 선험적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정말이지, 대중은 그르고 개인은 언제나 옳은 것 같아 보인다. (중략) 오직 두 가지뿐이다. 어여쁜 처녀들과의 사랑 그리고 듀크 엘링턴이나 뉴올리언즈의 음악. 그 나머지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추하기 때문이다.


    *



    콜랭은 그 남자가 인간의 머리가 아닌 비둘기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왜 그가 수영장이 아닌 스케이트장 부서에 배치되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

    그(사제)는 악단장이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는 이유를 내세워 방금 그의 사례금 지불을 거부함으로써 또다시 사기 행각을 벌였다.

    *



    '일을 한다는 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그들도 들었겠지.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습관적으로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것뿐이지.

    *



    파르트르가 일어나더니 토사물의 박제 견본들을 청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날사과와 적포도주가 섞인 가장 아름다운 토사물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



    "녹음기예요. 강연회 때 쓰려고 사뒀어요."

    이시스. "오! 정말 좋은 생각인걸요...... 그게 있으면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겠어요."

    "맞아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밤새워 들을 수가 있겠지요. 물론 디스크를 손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말이에요. 난 미리 녹음을 해두고 '성자의 외침' 같은 상점에 부탁해서 상업용 판을 발매하도록 할 거에요."

    (중략) 시크가 한마디 했다. "전부 다 알아들으려고 애쓰지는 마. 시간 날 때 녹음된 걸 들으면 되니까 말이야."


    *



    담당자는 그다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두 사람을 어슬렁어슬렁 따라왔다. 고개를 돌려 담당자가 10미터쯤 떨어져서 걸어오는 걸 본 콜랭은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콜랭이 뛰어올라 스케이트를 신은 발로 턱 밑을 사정없이 난폭하게 올려 차자 담당자의 머리가 날아가 기관실의 환기구 위에 떨어졌고, 그 틈을 이용해서 콜랭은 시체가 멍하니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열쇠를 빼앗았다. 탈의함 하나를 연 콜랭은 시체를 그 안으로 밀어넣고 침을 뱉은 다음 309번 탈의함을 향해 뛰어갔다.

    (중략) 128번 탈의함의 문 아래에서 피가 거품을 일으키며 가느다란 도랑처럼 꾸물꾸물 천천히 흘러나왔고, 그 붉은 액체는 다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굵고 무거운 방울이 되어 얼음판 위를 흐르기 시작했다.

    *



    콜랭이 물었다.

    "정상입니까, 의사 선생님?"

    "어느 정도는......"

    교수가 자신의 짧은 수염을 잡아당기자 수염은 둔탁하게 썩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콜랭이 물었다.

    "정밀 진단을 받으러 언제쯤 가야 합니까?"

    "사흘 뒤에 오시오, 치료 기구를 수리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클로에가 물었다.

    "평소에 치료 기구를 사용하지 않으세요?"

    "그렇습니다. 난 축소된 비행기 모델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한시도 빼지 않고 귀찮게들 구는 바람에 그 뒤부터는 더 이상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태고 완성할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정말 짜증 나는 일입니다, 젠장!"


    *



    파르트르는 자기처럼 와서 마시고 글을 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집에서 마시고 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들은 메르스 차와 도수 약한 알코올 음료를 마시는데, 그렇게 하면 그들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던 생각들이 움직여 그중에서 한두 개는 건질 수 있는 법이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해서 다 버리지는 않고 약간의 생각과 약간의 쓸데없는 것을 희석한다.


    *



    경리부에서는 콜랭에게 돈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이제 그는 매일같이 사람들의 집에 올라가야만 한다. 명단을 넘겨받으면 불행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그 불행을 알리는 것이었다.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