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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국내에서 여성혐오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난 스스로를 성적 스테레오타입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젠더와 관련된 논란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편안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20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내게도 사회에서 요구하고 기대하는 '여성'으로서의 의무와 행동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고, 아빠에게 페미니즘과 관련된 소설들을 추천받으면서 이전처럼 '난 성별에 제약받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가 성인 여성으로써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들을 이해하고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새해에는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봤고, 그 중 유독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고등학교 때 creative writing 수업에서 글쓰기 관련 강의를 들었을 때도 저자가 강의를 똑부러지게 잘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에 수록된 연설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의 행동에서 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도 깊은 의미를 가진 강의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이 책을 보급했다던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도 이 책을 읽힌다면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일찌감치 양성 평등에 대한 문제를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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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사람이 될지 걱정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내선 안 되고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터프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더구나 돌아서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 남자들을 칭찬하거나 면책해줍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에게 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잡지며 책이 넘쳐납니다. 그에 비해 남자들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글은 훨씬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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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나이지리아의 한 대학에서 젊은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나이지라 젊은이들의 반응은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야 강간은 나쁜 짓이지만, 애초에 왜 여자애가 남자애 네명하고 한방에 있었다죠? (중략) 그렇게 대답한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은 본질적인 잘못이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겐 아무것도 기대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도 받았기 때문에, 남자를 자기통제력이 없는 야만인으로 보는 시각조차 별 문제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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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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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맣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내 친구 루이스처럼, 옛날에는 상황이 나빴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좋아졌다고 말한다는 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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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내가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웬 남자가 묻더군요.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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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건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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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증조할머니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할머니는 결혼하기 싫은 남자의 집에서 달아나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접근권을 박탈당한다고 느끼자 그에 대해 거부했고, 항의했고,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할머니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되찾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페미니스트는 내 남동생 케네입니다. 케네는 다정하고, 잘생기고, 대단히 남자다운 청년입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 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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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이 자신을 움츠리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었다. 친웨 아줌마는 부유함도 여자를 그런 힘으로부터 막아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교육도 아름다움도 그 힘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줌마의 영향 덕분에 나는 자랑스럽고 복잡한 내 여성성을 원래 모습 그대로 살아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너는 여자니까"라는 말은 무엇에 대해서든 유효한 이유가 아니라고 거부하겠다고. 나의 가장 진실되고 가장 인간적인 자아로 살고자 애쓰겠다고, 하지만 세상의 인정을 구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억지로 변형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