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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

     

     

      울프의 소설 중에선 가장 쉽게 읽혔다. 오래전에 봤던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도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소설에서는 영화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장면들을 더 깊이 있게 다루어서 훨씬 강렬했다. 영화가 이야기의 핵심들을 강렬한 이미지로 응축해서 담아냈다면 (그리고 본질을 잃지 않고 그 나름대로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소설은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성적 스테레오타입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백 년 전의 사람이 이미 최근에 국내에서 일어난 '디폴트 운동'이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

      +) 전에 솔 출판사에서 낸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은 번역이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올란도>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꼈다. 버지니아 울프 소설을 몇 권 읽보면 줄글처럼 늘여 쓰는 게 울프의 특징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번역자는 그 줄글에서 주어나 목적어를 다 빼먹거나, 표준어가 아닌 단어를 쓰거나 (이건 원서도 그렇게 표현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저 혼자 다듬지 않은 듯한 문장으로 옮겨서 울프의 재능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버지니아 울프 안티라고 의심을 해도 조금도 과할 것이 없다. 

     

     

     


     

     

     

      그는 곧 열 쪽 이상을 시로 메웠다. 확실히 그의 필치는 유창했으나 내용은 추상적이었다. '악덕', '범죄', '비참' 따위가 그가 쓰는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땅을 다스리는 왕들과 왕비들이 있었고, 끔찍한 모략이 그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숭고한 감정이 넘쳐났다. 대사 가운데는 실제로 그가 썼음직한 단어는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유창하고 아름답게 쓰여 있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잠이라면 어떤 성격의 잠인가, 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잠은 치료를 위한 하나의 방법편일까--더없이 화가 나게 하는 기억들, 인생을 망쳐버릴 것 같은 일들을 검은 날개로 문지르고, 가장 추하고 천한 것들마저 까칠한 부분을 문지르고 금박을 입혀, 광택과 광채가 나게 하는 최면상태인가?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와 같은 생각(아니면 뭐라고 부르던 간에)에 잠겨, 그는 자기 인생의 몇 달, 몇 해를 보냈다. 아침을 먹고 나갈 때는 30세의 남자였던 그가, 저녁을 먹으러 돌아올 때는 적어도 55세의 남자가 되곤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과 몇 주간의 시간이 그의 나이에 100세를 더했는가 하면, 다른 몇 주는 고작 3초를 더했을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인간의 일생의 길이를 (동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자) 가늠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긴 세월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장미꽃 한 잎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보다 짧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번갈아서, 게다가 더욱 혼란스럽게도, 동시에 불행한 우리 얼간이들을 지배하는 장단 두 개의 힘 가운데서, 올랜도는 때로는 코끼리 걸음을 하는 신의 영향을 받는가 하면, 때로는 재빠른 파리 날개를 단 신의 영향에 휘둘렸다. 그에게 인생은 터무니없이 길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도 그것은 번개처럼 지나갔다.

     

     

     

      병은 고독한 올랜도를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6시간씩이나 책 읽는 일이 있었고, 가축의 도살이나 귀리 추수에 관한 지시를 받으려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의 2절판 책을 밀어놓고, 그들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어서, 매 사냥꾼 홀, 마부 자일스, 가정부 그림스디치 부인, 집안의 목사 더퍼 씨 등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저런 훌륭한 신사에게 책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책은 그가 아니고 반신불수 환자나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읽게 하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단 독서병에 걸리면, 몸의 기관이 약해져서 쉽사리 다른 재앙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잉크 병 안에 숨어 있고, 깃털 펜 속에서 곪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병자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 하나와 테이블뿐이어서, 잃을 것이 별로 없는 가난뱅이에게도 문제려니와, 집이 있고, 가축이 있고, 하녀들이 있고, 나귀들과 리넨이 있으면서 글을 쓰는 부자의 경우에는 그 입장은 참으로 딱하다. 이런 물건들을 즐길 수 없다. 그는 온몸에 뜨거운 인두질을 당하고, 해충에게 물리게 된다. 그는 작은 책 하나를 쓰고 유명해지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한다 (그만큼 이 해충은 질이 나쁘다). 그러나 페루의 금을 모조리 다 쓴다고 해도, 그는 한 줄의 멋진 표현이라는 보석을 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탈진해서 병이 들고, 권총으로 뇌를 날려버리거나, 절망 끝에 얼굴을 벽으로 향한다.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을 지나 지옥의 불길에 태워진 뒤니까.

     

     

     

      추억은 재봉사이고, 게다가 변덕스럽다. 추억은 바늘을 안팎으로, 위아래로, 이리저리 누빈다. 우리는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뒤에 뭐가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테이블을 향해 앉거나, 잉크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동작이 수많은 무관한 조각들을 흔들어놓아, 이들은 마치 강풍 속의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열네 식구 가족의 속내의처럼, 때로는 밝게, 때로는 어둡게 늘어져 있는가 하면, 위아래로 깔딱거리고, 밑으로 잠기는가 하면 휘날리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아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단 하나의 분명하고 단순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날개의 퍼덕임과 떨림, 그리고 빛의 명멸이 수반된다.

     

     

     

      그러나 '겸손' 부인이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겸손'이라고 부르는 여자이다. 나는 처녀이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열매를 맺는 들판도, 비옥한 포도 농장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 번식은 내게는 혐오스러운 것이고, 사과들이 싹트거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나는 멀리멀리 달아난다. 망토가 흘러내리고, 머리칼은 눈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용서하시라, 제발!" 

     

     

     

      사실상 이와 같은 의견의 차이는 피튀기는 싸움과 혁명을 야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도시들은 그보다도 못한 의견의 차이 때문에 약탈당하고, 그리고 무수한 순교자들이 여기서 다툰 논쟁거리의 어느 하나에서 한 치의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화형을 감내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휘그당과 토리당, 자유당과 노동당이--그들의 위신 때문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싸운다는 것인가? 어느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대적시키고, 어느 교구가 다른 교가 망하기를 원하는 것은, 진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이기려는 욕망 때문이다. 사람"마다 진리의 승리나 미덕의 찬양보다 마음의 평화와 다른 사람의 복종을 원한다--

     

     

     

      "아! 아!"라고 그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소리쳤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제아무리 터무니없어도 남정네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스커트를 입고 있다면, 내가 수영을 할 수 없다면, 내가 선원의 구조를 받아야 한다면, 맙소사! 그래야만 하지!" 라고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자 마음이 우울해졌다. 천성적으로 솔직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라면 질색이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지겨웠다. 말을 돌린다는 것이 에두르는 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에 꽃무늬가 그려진 비단--선원에게 구조되는 기쁨--만약 이런 것들이 우회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면 우회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내가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여성으로서의 나의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 "머리 손질만 해도"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침 한 시간은 족히 잡아먹지. 거울 들여다보는 데 또 한 시간, 코르셋의 안을 받치고, 레이스를 달아야 하고, 얼굴을 씻고, 분을 바르고, 실크 옷을 레이스로 갈아입고, 레이스를 꽃무늬 견직물 옷으로 갈아입고, 해마다 순결을 지켜야 하고..." 여기서 짜증이 난 그녀는 다리를 툭 차올리면서 종아리를 한두 인치 보였다. 마침 그때 우연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돛대 위의 선원이 너무 놀라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내기에서 사기를 쳤다는 것은 중대사이다. 게임에서 사기를 친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가 말했다. 여기서 그는 완전히 무너졌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그는 본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한낱 여자에 불과하노라고 말했다. 간략하게 말해, 그는 기사도 정신으로 그녀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가 난폭한 언어를 사용한 것을 용서해달라며 몸을 굽혔을 때, 올랜도는 그가 교만한 머리를 숙인 틈에 그의 피부와 셔츠 사이에 두꺼비를 한 마리 떨어뜨려 문제를 간단히 끝내고 말았다.

     

     

     

      예를 들어 올랜도가 글쓰기를 방해받았을 때, 그녀가 원고를 감춘 것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녀가 오랫동안 열심히 깊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일. 그리고 지금 그녀가 런던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말들이 조금 빠르게 달린다 싶으면, 놀라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자기 글에 대한 겸손, 자기 용모에 대한 자부심, 자신의 안전에 대한 공포 따위 이 모두가, 조금 전에 남자로서의 올랜도와 여자로서의 올랜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했던 조금 전의 말이, 전적으로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녀는 여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자기 두뇌에 대해서는 보다 겸손해지고 있었으며, 용모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떤 감수성은 더 강해졌고, 다른 감수성은 약해졌다. 옷의 변화가 이와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을 것이다. 사소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옷은 보온이라는 기능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옷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다. 예를 들어 바르톨러스 선장이 올랜도의 스커트를 보았을 때, 그는 그녀를 위해 당장 차양을 치게 했고, 고기 한 쪽을 더 들라고 강요했으며, 기다란 배를 타고 그와 함께 상륙하자고 제안했었다. 만약 그녀의 스커트가 길고 넉넉한 모양이 아니라, 바지 모양으로 다리에 착 달라붙게 마름질되어 있었더라면, 이러한 배려는 없었을 것이다. 배려를 받았으면 보답하는 것이 당연하다. 올랜도는 무릎과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공손하게 행동했다. 그리하여 착한 선장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이것도 만약 선장의 단정한 반바지가 여인네의 스커트였다면, 그리고 끈을 꼬아 장식한 그의 코트가 여인네의 새틴 보디스였다면 가능치 않았을 일이었다. 우리는 옷이 팔이나 가슴의 형태를 갖도록 만들지만, 옷은 우리의 가슴, 두뇌, 혀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 이리하여 스커트를 입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올랜도는 눈에 띄게 변해, 심지어는 얼굴마저 달라져 있었다. 남자 때의 올랜도와 여자 때의 올랜도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은 틀림없는 동일 인물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남자 올랜도는 아무 때나 칼을 뽑을 수 있도록 손이 비어 있는 반면에, 여자 올랜도의 손은 새틴 숄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잡아주어야만 한다.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체스터필드 경이 절대로 누설하지 말라는 엄명과 함께 자기 아들에게, "여자는 덩치가 큰 애와 같다... 지각이 있는 남자라면 그들을 적당히 상대하고, 그들과 놀아주고, 기분을 맞춰주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된다"라고 일러주었는데, 애들은 언제나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을 듣고, 게다가 어차피 어른이 되니까, 그런데 이 말이 어쩌다 새어나가, 차를 따른다는 의식 전체가 묘한 것이 되어버린다. 어떤 재사가 한 여인에게 시를 보내고, 그녀의 판단을 칭송하고, 그녀의 비평을 간청하고, 그녀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기는 해도, 결코 그가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녀의 이해력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어서, 칼이 없다면 펜으로라도 그녀를 찌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인은 알고 있다. (중략)
      그는 올랜도 쪽을 향해 「여인의 성격」의 유명한 한 행("대부분의 여자는 성격이 없다")을 적은 원고를 그녀에게 주었다. 나중에는 이 부분에 손을 대지만, 초고의 상태로도 충분히 주목을 끌만 했다. 올랜도는 이것을 무릎 굽혀 인사하고 받았다. 포프 씨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올랜도는 상기된 뺨을 식히기 위해 정원 한 끝에 있는 개암나무 숲으로 천천히 걸어갔는데, 정말 그녀는 그 키 작은 사람한테 따귀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자기 팔에 가볍게 그러면서 애원하듯 매달려 있는 것을 느끼자, 올랜도는 남자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올랜도는 남자처럼 보였고, 남자처럼 느꼈고, 남자처럼 말을 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도 그녀 자신이 여자였으므로, 올랜도는 그 소녀의 수줍음과 머뭇거리는 대답, 빗장에 열쇠를 꽂느라 더듬거리는 바로 그 모습, 주름 잡힌 외투, 축 늘어진 팔하며, 이 모든 것이 자기의 남자다움을 만족시키려 꾸민 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당시 올랜도가 이 옷 저 옷 자주 갈아입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그녀는 당시의 회고록에 자주 아무개 "경"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그녀 사촌이다. 그녀의 자선 행위는 사촌이 한 것으로 여겨지고, 실제로는 그녀가 쓴 시들이 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랜도에게 1인 2역을 유지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성은 옷이 한 벌밖에 없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자주 변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해서 그녀가 두 배의 소득을 얻었다는 사실도 의심할 바가 없다. 인생의 즐거움은 늘어나고 경험은 풍부해졌다. 올랜도는 바지를 입은 성실한 모습에서 페티코트를 입은 매혹적인 여성으로 변모하면서 두 성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똑같이 즐겼다.
      그러니까 그녀는 남녀의 구별이 애매한 중국풍의 헐렁한 가운을 걸치고, 책에 파묻혀서 오전을 보내다가, 같은 의상으로 한두 사람의 의뢰인을 맞는다 (그녀에게 수십 명의 탄원자들이 왔다). 그리고 그녀는 정원을 한 바퀴 돌고는 개암나무를 전지해주는데--그 작업을 위해서는 반바지가 편하다. 그러고는 꽃무늬가 있는 태피터로 갈아입곤 했는데, 이 옷은 리치몬드로 마차를 타고 가서, 어느 지체 높은 귀족으로부터 청혼을 받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는 변호사들이 입는 황갈색 가운을 입고, 자기 소송 사건들의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법원을 찾아가곤 했다--그녀의 재산은 시시각각 줄고 있었으며, 소송 사건들은 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밤이 오면 자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한 귀족이 되어 모험을 찾아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녀는 그 시대정신에 교묘하게 경의를 표시해서, 다시 말해, 반지를 끼고, 황야에서 한 남자를 발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풍자가나 냉소주의자나 심리학자가 되지 않고--이런 것들은 금세 들켰을 것이다--시대정신의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한 일이지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작가와 시대정신 사이의 상호 교섭은 지극히 섬세한 것이며, 작품의 운명은 오로지 둘 사이의 은밀한 협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올랜도가 체험한 이런 순간을 나도 경험하고 싶다.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