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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방학 동안 본 영화들 짤막한 감상

    레터박스에서 하트 표시한 영화들 외에도 뭔가 보고 나서 하고픈 말이 많았던 영화들만 정리해본다.

     

     



    1. 올랜도 (1993)

     

     

     

     

     

     

       한동안 이 영화가 좋은 작품이지만 재밌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울프의 원작 소설을 다시 읽고 보니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마지막엔 거의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소설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린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울프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샐리 포터가 덧붙이면서도 조금도 영화를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은 게 좋았다.


       소설에서 올랜도가 터키 대사였던 시절은 그저 '그렇게 살았던 때'로 끝나고 말지만 영화 속에서는 터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흔히 백인들의 관점에서 다뤄지듯 신비로운 동시에 미개한 이국의 모습으로 그리는 대신 서로 연대하고 공존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소설은 쓰여진 시대가 시대아다 보니 가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은 묘사가 가끔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샐리 포터가 잘 순화시켰다.

       올랜도가 러시아 공주 사샤를 이해하는 과정을 표현한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다 옮겨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포터는 사샤에게 "너는 내 거야, 왜냐하면 내가 널 사랑하니까!"를 외치던 올랜도가 여자로 변한 뒤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올랜도가 이를 통해 사샤가 왜 자신을 떠났는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구속하려 드는 구애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문장의 호흡이 긴 편에 속하고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영상화하기 무척 까다로운 작가일 듯하다. 그러나 샐리 포터는 원작 속 배경은 세밀하게 묘사하는 한편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스스로 새로운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울프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올란도가 청혼을 거절한 뒤 미로 속을 한참 헤매이는 장면을 통해 앞문단에서 언급한 부분을 표현했고, 소설에서 다소 알쏭달쏭하게 나왔던 쉘머딘과의 관계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와 이별 장면을 통해 간단히 표현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영화를 봐도 무척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틸다 스윈튼이 올란도를 연기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지금 영화를 리메이크한다 해도 틸다 스윈튼 아니면 올란도를 연기할 인물은 없을 것 같다.

     

     

     

     

    2. 지옥의 묵시록 (1979)

     

     

     

     

     

     

       정작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있을 때는 긴 러닝타임에 질려서 보지를 못하다 이번에는 어째서 보기로 결심한 것인지 그 계기가 도무지 생각나지를 않는데, 아마도 와일드 원을 보고 나서 말론 브란도의 똘끼어린 빡빡머리 모습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여하튼 세상에 질려 무인도로 건너가 왕으로 군림하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마틴 쉰이었고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커츠 대령은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않아서 몹시 당황했음... 그래도 그동안 대량 학살 벌여놓고 PTSD에 시달리는 또라이들 나오는 미국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라 전쟁 영화라면 학을 뗐는데, 이건 아예 죄책감이고 뭐고 짜낼 겨를 없이 순도 100%의 찐광기를 보여줘서 4시간 가까이 보면서도 지겨운 줄을 모르고 봤다.

     

       그러나 또 이 영화가 어떤 점에서 다른 전쟁 영화들과 달리 좋은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확답을 못 하겠다. 그냥... 다들 미쳐 날뛰고 있어서...? 제작 과정에서 실제로 배우들과 제작진들이 정신줄을 놔버려서...? 커츠 대령이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얼굴을 비추던 게 위압적으로 보이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 자꾸만 어디서 맛있는 걸 먹고 살이 쪄서 돌아오는 말론 브란도의 덩치를 가리기 위한 의도였다는 거...?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이유를 곱씹는 것조차도 등장인물들과 함께 미쳐가는 것 같다.

     

     

     

     

    3. 대부 3부작 

     

     

     

     

     

     

      재수 끝나고 나서 대부 1을 처음 봤는데 어어, 이거 생각보다 엄청 재밌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뒤로 바빠서 2부는 중도하차했다가 최근에 말론 브란도 필모 깨기를 한동안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3부작을 쫙 봤다. 

     

      '대부'하면 보통 많이 내세우는 이미지가 비토 콜레오네의 모습이다보니 처음 이걸 봤을 때도 말론 브란도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봤는데 (마이클 샛기가 잠수이별과 시기상조의 재혼을 하는 걸 보면서 분노하느라 더더욱 정신이 팔리기도 했음), 이번에 다시 보면서 대부의 진주인공은 비토가 아니라 마이클이었고, 비토가 왠지 모르게 대부의 아이콘이 된 것은 말론 브란도의 존재감이 너무 강려크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사실 말론 브란도가 불독 같은 입으로 맥아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리까리한 연기를 지나치게 잘 해서 그렇지 알 파치노도 여기서 굉장히 연기 잘 했음... 초반에만 봐도 걍 콜레오네 집안의 똘똘한 귀염둥이 막내 같은 눈빛인데 시칠리아 한 번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눈빛이 싹 못된 차세대 갱스터 보스처럼 변해 있다...

     

      나중에 또 다시 보면 두번째 감상 때 비로소 마이클의 존재감을 느꼈던 것처럼 달라지려나 싶긴 한데, 이번에 대부를 보는 동안에는 여기 등장하는 온갖 사건보다는 콜레오네 가족들 모습이 내 이목을 더 끌었다. 마피아라는 사실을 싹 배제하고 보면 그냥 딱 평범한 대가족 이야기 같고 어찌보면 평범한 가족들보다 더 화목한 것 같기도 해서 (마이클 때부터는 파탄나기는 했지만) 24시 시즌 1부터 가진 악당 가족일수록 서로를 더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나의 신념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3편은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마지막에 마이클 죽는 장면을 보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게 좀 이상한 이야기인 데다 영화가 주려던 인생무상의 메시지에서 많이 어긋나기는 한데... 어쨌든 마이클은 가족을 싹 잃고는 홀로 쓸쓸하게 죽었어도 돈 많은 마피아 보스니까 집사들을 여럿 고용해 놨을 것이니 그의 시체를 제때 발견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혼자 살다 죽을 확률이 거의 100%에 수렴하는데, 내게 가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일이 바로 내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몰라서 한참 후에나 부패한 시체가 발견되는 것이니 언제나 죽은 뒤의 일이 걱정될 때가 많다. 그래서 마이클을 보고는 돈을 최대한 많이 벌어둬 내가 죽어도 최악의 일이 발생하는 걸 방지할 수 있게끔 젊을 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제 이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네... 여튼 대부가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게 생겼네요..

     

     

     

    4. 판타스틱 플래닛 (1973)

     

     

     

     

     

     

     

       고2때쯤에 Youth Lagoon의 뮤직비디오를 보곤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엔 너무 기괴하고 무섭게 느껴져서 한동안 새벽에 공부하다 느닷없이 영화 속 외계인들 모습이 생각나 소름이 확 끼치곤 했다 (그때는 밤늦게 공부하다 보면 바로 옆에 가족이 있어도 갑작스레 무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때와는 취향이 완전히 바뀌어서 기괴한 걸 신기해하면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최근 좋아하게 된 롤랑 토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드디어 볼 결심을 했다.

     

       내용은 뭐... 그냥 되게 싸이키델릭하군요! 스러운 이야기다. 최근에 하도 강렬한 영화들을 많이 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6, 70년대 즈음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ex. 노란 잠수함) 치고는 적당히 어지럽고 적당히 흥미로워서 재밌게 봤다.

     

    롤랑 토포 특유의 어둡게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도 이 영화에선 훨씬 순한 맛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에 옴들이 해방되고 나니 또 다른 동물을 데려다 키우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착취할 게 없으면 억지로라도 착취할 것을 만들어 내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꼬집은 것 같았다. 사실상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지구의 인간들이고 옴=지구 상의 다른 동물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잘 보면 옴들도 핍박당하기만 하는 존재 같지만 결투할 때 결투 동물을 데려와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게 만드는 녀석들이다. 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결국 이 세상은 착취의 왕국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주인공의 패션이 심각하게 끔찍하긴 하지만 그것만 견디고 본다면 러닝타임도 적당하고 건전한 이야기이니 가족들과 보기에도 적합하다. 

     

     

     

     

    5. 스카페이스 (1980)

     

     

     

     

     

     

     

      나는 양복 입은 엄근진한 남자들이 패싸움 벌이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고 (대부는 예외적인 케이스다), 이 영화도 그런 부류려니 하면서 여지껏 보지 않았던 것인데, 걍 또라이 영화였더라... 초반부터 전기톱 들고 설치는 인간이 나와서 ?? 이거 코미디였나??? 했는데 이후에도 등장인물들의 온갖 뻘짓이 멈추지 않는 걸 보곤 이 영화는 진지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또라이영화임을 깨달았다. 

     

      일단 대부에서는 냉철하기 그지없던 마이클 콜레오네를 연기한 배우를 여기선 성질 불같아서 감정 하나 쉽게 제어 못하는 토니 몬타나로 만든 것만 봐도 똘끼가 충만하다... 근데 이 점이 굉장히 강렬하게 작용해서 지금까지도 토니가 부린 온갖 지랄들에서 헤어나오질 못해 걸핏하면 유튜브에서 스카페이스 띵장면만 찾아보고 있다... 이로써 나는 머리로는 불초상이나 디 아워스가 진정한 띵작이요 씨네마의 정수다!를 외치나 가슴으로는 스카페이스라던지 펄프픽션 등등에 군침을 흘리는 Filmbro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6. 체리향기 (1997)

     

     

     

     

     

     

      "불행하게 사는 것도 큰 죄라네. 사람이 불행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야. 그것도 죄 아니겠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그것도 죄가 아니겠어? 가족을 괴롭히고 친구를 괴롭히고 자신을 괴롭히고. 그건 죄가 아닐까? 자넬 괴롭히면 죄가 아니고 내 목숨을 끊으면 그건 죄인 건가?"

     

     

      생각보다 호흡이 느린 영화라 조금은 지루하게 봤는데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여러 차례 곱씹다 보니 자연히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세상은 살기 싫어질 정도로 지옥 같은 일만 벌어지는 곳 같지만 가만 보면 따스한 일도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구에서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한다. 나는 이런 사실이 우리가 목숨을 끊지 않고 버티면서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잃었을 정도로 상처입은 사람에게 소소한 일상 따위는 마음을 고쳐먹게 하지 못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바디 씨의 자동차를 구덩이에서 꺼내 준 마을 사람들도, 한껏 즐거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관광객의 모습도 바디 씨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목숨을 끊는 것은 죄라고 말하는 신학교 학생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해 보라는 바게리 씨의 말 역시 바디 씨를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 아직 삶의 의욕을 가진 사람들의 시각과 이를 상실한 사람들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해해보려 하더라도 사람들은 바디 씨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기에 그의 불행을 이해할 수 없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런 점이 스티븐 달드리의 <디 아워스>의 주인공들이 겪는 우울감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보면 바게리 씨는 두 차례의 실패 끝에 찾아낸 바디 씨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결국에는 바디 씨의 불행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꼭 불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립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우중충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디 씨를 설득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불행한 상태에서 억지로 행복을 찾으려 드는 것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에게 더 살아갈 용기를 줄 때가 있다.

     

       바게리 씨가 목을 매달려고 했던 나무에 열린 체리의 향기를 맡고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순간을 체험했듯 바디 씨 역시 바게리 씨를 일터에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삶에 조금이나마 미련이 생긴듯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그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을 떠올리고 그로부터 무언가 희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죽고 싶어 하면서도 바게리 씨를 다시 찾아가 내일 자신이 죽지 않고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자신을 향해 돌멩이를 던져줄 것을 부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만히 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 바디 씨의 모습은 그가 죽을 경우엔 자신의 목표를 이룬 셈이니 행복해질 것이고, 설령 죽지 못하더라도 작은 희망이나마 되찾아 좀 더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할 것임을 암시한다.

     

       <체리 향기>는 '세상은 아름다우니 자살하지 마세요!'라고 외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이 좃 같고 불행에서 헤어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겠나요? 어쩌면 자살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 기묘한 영화다. 결국 이걸 보고 어떤 교훈을 얻는가는 관객의 몫에 달려 있을 것이다.

     

      

     

     

     

    7. 해피 고 럭키 (2008)

     

     

     

     

     

     

       마이클 리의 영화 중에선 '인생은 향기로워' 이후로 두 번째로 본 작품. 지금까지 본 이 두 편의 영화가 너무나도 따스했기 때문에 아직도 '네이키드' 줄거리를 볼 때마다 같은 감독이 찍은 영화라는 게 잘 믿기지가 않는다. '대부', '스카페이스', '지옥의 묵시록' 등등의 매운 맛 영화만 보다 간만에 힐링이 되었다.

     

       마지막 장면은 아마도 행복은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포피만큼 핵인싸 ADHD(ㅋㅋㅋㅋ)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도 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하고 증오 대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의 저는 그지 같은 운전 강사 스콧 같은 사람입죠.... 

     

     

     

     

    8. 그녀 (2013)

     

     

     

     

     

     

       이걸 처음 봤을 때가 한창 심란했을 때여서인지 당시에는 잔잔하게 감동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지루하다. 영화 개봉 이후에도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사만다 같은 OS가 그다지 놀라울 것 없이 곧 나올 듯도 싶고. 그저 이 영화에서와 같은 시대가 도래해 과몰입 오타쿠들이 사방팔방에서 날뛰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 지금도 저런 OS가 나오면 혼자 살아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도 조금은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이런 득보다는 과몰입 오타쿠의 등장으로 인한 실이 더 클 것 같음...


       +) 여기에서 등장하는 사만다는 이제는 다소 식상한 존재가 되었지만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9000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정말 잘 만든 악역이라고 생각한다.

     

     

     

     

    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

     

     

     

     

     

     

       올해 본 영화 중 지금까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 보는동안 애기들이 너무 귀여워서 절로 미소짓게 되었다. 러닝타임도 짧고 줄거리도 단순한데 비해 아흐메드가 네메자데를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긴장감 넘치게 연출되어서 꽤나 쫀쫀했다. 어린 시절 수업 시간에 깜빡하고 수학 익힘책 안 가져와서 절절매던 K-초딩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패닉에 빠진 아흐메드의 표정을 보며 공감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아이들이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단순히 꼬꼬마들의 순수한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뼈가 있는 영화다. 작중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흐메드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보호자답게 아이들에게 놀기 전에 공부부터 먼저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평범한 어른들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들의 전형이다.

     

       아흐메드 주변의 어른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심부름을 시키면서도 동시에 어서 숙제를 마치라고 다그친다. 아흐메드가 친구의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며 상황을 설명해도 사람들은 그에게 어서 공부하라며 윽박지르거나 대답조차 않고 무시해 버린다. 아흐메드의 할아버지가 "아이가 착하게 행동하더라도 어떻게든 빌미를 잡아 매를 때려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기성 세대의 꽉 막힌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아흐메드와 함께 네메자데의 집을 찾아 나선 대장간 할아버지는 그나마도 그에게 도움을 주는 유일한 어른이지만 결국에는 그조차도 아흐메드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한 채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늙은이에 불과하다. 이런 먹통 같은 어른들을 겪은 아흐메드는 훗날 그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자라났을지, 친구를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항상 작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10. 내가 뭘 잘못했길래 (1984)

     

     

     

     

     

       지금까지 본 알모도바르 영화 중에선 아직까지는 '페인 앤 글로리'가 가장 좋았지만, 그 이후 본격적으로 필모를 깨면서 본 영화 중에서는 '내가 뭘 잘못했길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첫장면부터가 아주 미쳐 돌아가서 마음에 들었고 이후에도 제정신인 인물이 하나도 없어서 좋았다. 내용은 제일 별 것 없는데도 그냥 전체적으로 아무말 대잔치 같은 느낌이 나는 게 너무 마음에 듦.. ㅋㅋㅋ 사진에 나온 저 노출증 손님을 구경하러 가는 장면도 너무 웃겼고 중간 중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연속극 장면들도 너무 웃겼음. ㅋㅋㅋㅋㅋㅋ

     

       이런 희한한 제목을 붙인 건 쉴틈없이 심란한 사건에 휘말리는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럽게 고생하는 엄마가 등장하는 영화 치곤 그다지 큰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글로리아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글로리아보다는 오히려 도마뱀 디네로가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고 울부짖으며 절규해 마땅한 것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맥락없는 똘끼가 가득하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는 아 이 감독은 어머니에게 미안함과 그리움을 많이 느끼나 보구나 싶을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나타나는데, 이 영화도 결국에는 모든 똘끼 넘치는 상황이 마무리된 뒤 '세상 천지가 어머니를 내팽개쳐도 게이 아들만큼은 어머니의 편이다'를 외친다. 

     

     

     

    11. 벌집의 정령 (1973)

     

     

     

     

     

       애기들이 너무 귀여워서 벽을 부술 뻔한 영화 #2.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 영화는 보통 조조 래빗 같은 스토리고 흔하디 흔하니까... 이 영화도 꼬마와 프랑켄슈타인 아저씨의 감동어린 우정 이야기! 였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 아나와 '정령'으로 여겨지는 군인 아저씨의 관계는 아주 잠깐 등장하고 아나를 중심으로 어린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사실 유년 시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끝없는 환상보다는 긴가민가한 현실의 연속으로 채워지지 않는가. 어린 시절의 우리는 현실에 대한 부족한 이해력 때문에 우리가 지금 체험한 것이 어떤 상황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때로는 현실 속의 대상을 환상 속의 대상으로 해석해 버리기도 한다. 아나 역시 폐허 속에서 마주친 군인 아저씨가 정령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채 그에게 다가갔고,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눈을 감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면 정령이 다시 찾아와 주리라고 믿는다. 

     

       아나와 정령의 찰나간의 만남을 보고 있으니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있어도 생각이 난다는 노래 구절이 떠올랐다.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 영화는 보통 조조 래빗스러운 느낌이고, 이런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니까... 이 영화도 꼬마와 프랑켄슈타인 아저씨의 감동어린 우정 이야기! 였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 아나와 '정령'으로 여겨지는 군인 아저씨의 관계는 아주 잠깐 등장하고 아나를 중심으로 어린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사실 유년 시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끝없는 환상보다는 긴가민가한 현실의 연속으로 채워지지 않는가. 어린 시절의 우리는 현실에 대한 부족한 이해력 때문에 우리가 지금 체험한 것이 어떤 상황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때로는 현실 속의 대상을 환상 속의 대상으로 해석해 버리기도 한다. 아나 역시 폐허 속에서 마주친 군인 아저씨가 정령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채 그에게 다가갔고,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눈을 감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면 정령이 다시 찾아와 주리라고 믿는다. 


       아나와 정령의 찰나간의 만남을 보고 있으니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있어도 생각이 난다는 노래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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