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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계선 /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삶이 감옥이라면, 갇힌 채 살아가다가도 벽이 어디 있는지,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벽뿐인지 아니면 탈출 통로가 존재하는지도. 티나에게는 학교 졸업파티가 그런 순간들 중 하나였다.

     

     

     

    적발된 밀수꾼들은 자포자기하면 티나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주로 그녀의 외모를 공격했다. 몽골인처럼 생겼다고도 했고, 죽는 편이 낫겠다고도 했다. 티나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거친 일은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범법자를 지목하기만 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연극이 끝나고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의 두려움을 피하고 싶었다.

     

     

     


    티나는 밖이 보이지 않도록 의자를 반대편으로 돌려 앉았다.
    어떻게 저런 바보짓을 할 수가 있지?
    마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가마우지 섬의 생활』의 한 장면, 그것도 감독조차 너무 역겨워 삭제한 장면에나 등장할 법한 꼴이었다.
    하지만 물론 실제로 벌어진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다.
    티나는 이웃이 행복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썼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잠시 동안 엘리사베트가 인생이 주는 다른 맛도 느낄 수 있도록 아기가 사산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버지는 퀴즈쇼 〈제퍼디〉를 보고 있었다. “빅토르 셰스트룀, 저런 멍청이!” 아버지는 영화 〈유령마차〉의 감독이 잉마르 베리만이라고 생각한 출연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다음 질문은 〈아르네스 경의 보물〉의 감독에 대해서였는데, 같은 출연자가 또 베리만 감독이라고 답하자 그는 말했다. “꺼버려라, 젠장. 보는 사람이 미치겠군.”
    티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텔레비전을 껐다.
    “원숭이를 훈련시켜도 저것보단 잘하겠네.” 아버지가 말했다. “볼 때마다 짜증나 죽겠는데 왜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 저기 오렌지주스 좀 주겠니?”

     

     

     

    티나는 헤이코가 운전석에 올라 트럭을 몰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문득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상대를 거칠게 대하는 것도 필요했고 이제 그런 일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진짜 그녀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맡은 일을 하는 데 필수적인 허울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더 의미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드카 상자 따위에 뭐하러 신경쓴단 말인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독점 주류회사 말고 누가 손해를 본단 말인가?
    헤이코는 아마 이웃 사람 몇몇에게 저 보드카를 두세 병씩 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할 테고 아이는 새 바이올린을 사게 될 것이다. 세관에서 일하는 마녀만 없으면 온 세상에 친절과 빛이 넘쳐나리라. 어쩌면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자문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마약은 다른 문제니까. 마약과 관련해서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았다.
    티나는 마음의 눈으로 헤이코가 집에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내를 만난다. 아들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훌쩍 자란 손가락으로 연주하기에는 너무 작은 낡은 바이올린으로 계속 연습하는 아들.
    빌어먹을. 티나는 생각했다. 거짓말인지도 몰라.
    그러나 헤이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티나도 알았다. 그것이 가벼운 처벌을 한 이유였다. 세관의 마녀가.

     

     

     

    저녁에 엘리사베트가 아기를 안고 찾아왔다. 수다가 끝이 없었다. 더 우울해졌지만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무민’ 책에서는 늘 이런 기분을 “울울하다”고 말한다. 우울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울하지 않고 울울할 수만 있다면. 슬프지만 왠지 즐길 수 있는 기분일 것 같다.

     

     

     

    시간은 날아가지도 흘러가지도 기어가지도 않는다. 시간은 완벽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모놀리스를 도는 유인원들처럼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건 우리다. 시간은 검고 단단하고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시간 주위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다가, 결국 그 속으로 빨려든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여러분이 믿을지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면 희망이 느껴진다.

     

     

     

    당장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들이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온전히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상황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무슨 일이든 남북전쟁이나 난파선 혹은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벌어지면 더 그럴듯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그림을 액자로 판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나리자〉가 명작인 가장 큰 이유를 화려한 액자 모서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랑은 사랑이다. 극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상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포기할 순수한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흔한 사랑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며, 그 역시 위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은 서로 매일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든 삶을 상대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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