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엄마는 미국 격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므로 자기만의 것을 몇 가지 만들어냈다. "오직 엄마만이 너한테 진실을 말해줄 수 있어. 왜냐면 진짜로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니까" 같은 말들을. 엄마가 일찌감치 나에게 가르쳤던 것 중에 지금 생각나는 말은 이런 거다. "너의 10퍼센트는 따로 남겨 두어라." 누군가를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혹은 깊이 사랑받는다고 믿더라도 절대 네 전부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항상 10퍼센트는 남겨두어라. 네 자신이 언제든 기댈 곳이 있도록. "나도 네 아빠한테 내 맘을 온전히 다 내어주지 않는단다." 엄마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은미 이모, 성용 오빠와 보냈다. 둘의 시디 컬렉션을 뒤적이고 그해 새로 유행하는 한국 캐릭터-파자마 시스터나 블루베어, 아니면 머리에 뚫어뻥을 달고 다니는 괴상한 토끼인 마시마로-가 점령한 문구점에 같이 가달라고 두 사람을 조르곤 했다.




와 라떼는 아트박스 가면 저 캐릭터들 팬시상품이 잔뜩 있었는데 요즘 아가덜은... 카카오프렌즈밖에 모르겄지...?
어릴 때 파자마 시스터즈 정말 좋아했는데(쥬니버에서 게임도 있어서 그거 맨날 하고 놀았다) 이부분 읽으면서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잘 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 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덩컨은 이제 막 라나 델 레이를 다룬 커버스토리를 마감하고 오는 길이었다. 나는 덩컨을 붙잡고 인터뷰 뒷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라서 라나가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웠고 자기 말이 잘못 인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폰으로 인터뷰 전 과정을 녹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필모어에서 열린 예 예 예스의 라이브 공연 DVD를 처음 손에 넣은 순간만큼 큰 충격을 받은 때는 없었다. 꼭 나처럼 생긴 가수 캐런 오는 내가 숭배한 음악 세계의 첫 아이콘이었다. 캐런 오는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백인으로, 유순한 아시아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깡그리 잊게 만드는 독보적인 쇼맨십을 선보였다. 캐런은 거칠고 익살스러운 무대 매너로 유명했다. 허공으로 물을 내뿜거나 껑충껑충 뛰어서 무대 양끝을 오가는가 하면, 마이크를 입안에 쑥 집어넣었다가 다시 빼서 마이크 줄을 길게 잡고 머리 위로 휙 던져 올렸다. 그런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묘한 양가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이런 걸 하는 아시아 여자가 이미 있으니 내가 설 자리는 이제 없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소수자 정서가 뭔지 몰랐다. 음악계에서 대표성을 둘러싼 토론은 이제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나는 음악을 하는 다른 여자들은 잘 몰랐기에, 실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여자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같은 처지의 백인 남자는 어떨지 상상해 유추해볼 능력도 없었다. 그 남자가 이를테면 스투지스의 라이브 공연 DVD를 보면서, 이미 이기 팝이 있는데 음악계에 또다른 백인 남자가 설 자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당시에 나는 몰리가 닉이 사귄 아이들 중 한명의 이름 아니면 마야 브라운의 필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은 그게 너바나 곡을 리메이크한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음악에 무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닉 역시 적어도 너바나의 이 곡이 스코틀랜드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바셀린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거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식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조금 있다가 계란찜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계란찜은 한국 식당에서 정성 들여 만드는 반찬으로, 향긋한 풍미가 식욕을 돋우는 계란 커스터드다. 영양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부드러운 맛과 식감 때문에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아시아 대륙에는 두 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대답도 못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넌 그럼 뭐야?"는 열두 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내 절반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이젠 갑자기 그것이 내 본질적 특징이 될까봐 두려워져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병원 유니폼을 입고 수술용 마스크를 쓴 남자가 컨베이어 벨트와 연결된 유골 수습대 앞에 서 있었다. 한 무더기의 재가 되어 나온 유골은 고운 가루가 아니라 허물어진 건물 잔해에 더 가까웠다. 뼛조각이, 이모의 뼈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나는 갑자기 중심을 잃었고, 쓰러지는 나를 아빠가 재빨리 붙잡았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이모의 유골을 샌드위치 포장지처럼 생긴 걸로 깔끔하게 쌌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게 진짜 샌드위치이기라도 한 양 튀어나온 가장자리를 무심히 구겨넣고 항아리 안에 툭 떨구었다.




그때까지 나는 살아가기와 죽어가기는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는 식물인간으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터였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미 찢겨나간 육체적 자율성의 조각들은 하루하루 누더기 꼴이 되어갔고, 이제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은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병상에 묶여 혼자 걸을 수도 없었고 각종 장기도 더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음식도 팔에 연결된 수액 주머니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로 섭취하다가 이제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숨도 혼자 못 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모습에서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과연 내가 엄마의 모든 걸 알게 될 수 있을지, 엄마가 또 무슨 단서를 남겼을지도.





평양은 북한의 수도로 서울에서 320킬로미터도 채 안 떨어져 있고, 함흥은 저 위 북동 해안에 있는 도시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피란 온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이 먹던 음식을 전파한 덕분에 한국에서는 두 요리 모두 인기를 끌었다. 나중에 남북의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때 같이 물냉면을 먹었다. 그 정상회담은 북한 지도자가 전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38선을 넘은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주었고, 그뒤로 한국에서는 냉면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냉면가게로 몰려든 모습은 마치 평화를 약속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엄마가 지난 몇 년간 나를 지켜봤다면 아마 굉장히 기뻐했을 것이다. 내가 멋지게 차려입은 채 패션잡지 화보를 찍고, 역사상 최초로 한국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유튜브에서 열다섯 단계 피부 관리법을 알려주는 채널들이 수백만 뷰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내 평소 신념과는 완전히 모순된 생각이지만, 엄마가 그 모든 걸 볼 수 있다고, 드디어 내가 속할 곳을 찾아 엄마가 기뻐한다고 믿어야만 했다.





바의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자 존은 신중현 노래를 하나 틀어주었다. 신중현은 한국의 필 스펙터로, 당대 여자 가수들을 위해 감미로운 훅과 몽환적인 리듬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는 김정미라는 가수를 위해 만든 <햇님>이라는 노래였다. 이 6분짜리 포크송은 도입부에 핑거피크를 사용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해 음악이 진행될수록 구슬픈 현악기 소리가 더해지면서 소리가 점점 증폭됐다. 우리는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가사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소리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취했고, 애수에 잠겼고, 깊이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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