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 🌈 세상 뛰어 넘기, 장상
  • 🌺 goodreads / letterboxd
  • 🪐 since 2010. 03. 29​ / 🎗​
  •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왼쪽 귓속에서 온 세상의 개들이 짖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귀를 잘라버렸다

     

    손에 쥔 칼날 끝에서

    빨간 버찌가

    텅 빈 유화지 위로 떨어진다

     

    한 개의 귀만 남았을 때

    들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얼마나 별이 빛나고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색깔들이 얼마나 메아리치는지

     

    왼쪽 귀에서 세계가 지르는 비명을 듣느라

    오른쪽 귓속에서 울리는 피의 휘파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커다란 귀를 잘라

    바람 소리 요란한 밀밭에 던져버렸다

    살점을 뜯으러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두 귀를 다 자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멍청한 표정으로 내 자화상을 바라본다

     -<고흐>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서른>

     

    높은 데서 떨어지고 싶다

    식물원 천장, 빛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땅 위를 걷는 새들 지나

    하수구 바닥에 모인 검은 쥐떼에게

     

    잠시 목례하고

    계속 떨어지고 싶다

     

    암매장된 부랑자의 흰 뼈를 어루만지며

    흐르는 젖은 노래에게로

     - <추락>

     

    내 가슴엔

    멜랑멜랑한 꼬리를 가진 우울한 염소가 한 마리

    살고 있어

    종일토록 종이들만 먹어치우곤

    시시한 시들만 토해냈네

    켜켜이 쏟아지는 햇빛 속을 단정한 몸짓으로 지나쳐

    가는 아이들의 속도에 가끔 겁나기도 했지만

    빈둥빈둥 노는 듯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담배만 피우던 시절

     - <대학 시절>

     

                                   나

                  나

                            나

    는 공사판으로 내려온 눈송이

    한 일이라곤 증발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눈송이들이 인부의 어깨를 적시는 동안

    다른 눈송이들이 거리를 덧칠하는 동안

    다른 눈송이들이 아이들의 다리를 흔드는 동안

     

    한 일이라곤 증발하는 일,

    낼름거리는 불꽃의 드럼통 속으로

     -<어느 눈 오는 날>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로스의 종말 / 한병철  (0) 2021.04.04
    The Phantom Tollbooth / Norton Juster  (0) 2021.03.07
    Therese Raquin / Emil Zola  (0) 2020.11.08
    The Martian Chronicles / Ray Bradbury  (0) 2020.10.19
    Opium and Absinthe / Lydia Kang  (0) 2020.09.08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