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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사실 그 순간은 단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에 시계를 풀어놓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차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언제나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난 머지않아 그 사람이 조심스레 시계를 훔쳐볼 시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얼음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가서 문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후면 저 사람은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겠지” 하는 말들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천천히 옷을 입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양말을 신고, 팬티와 바지를 입고 나서 넥타이를 매기 위해 거울 앞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는 이브 생 로랑 정장과 세루티 넥타이, 그리고 대형 승용차를 유난히 좋아했다. 동구 출신인 그 사람은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면 프랑스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작정인 듯, 항상 옷을 잘 차려입고 라이트를 켠 채 한마디 말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누가 자신을 보고 알랭 들롱을 닮았다고 하면 굉장히 좋아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흔히 그러하듯 프랑스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그다지 매료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텔레비전 프로도 오락 프로나 〈샌타바버라〉 같은 통속극을 즐겨 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프랑스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사회적 신분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질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 사람의 경우엔 외국인으로서의 문화적인 차이로 느껴질 뿐이었다. A의 그런 모습에서 나 자신에게도 분명히 있을,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다.

     

     

    파리 시내를 걷다가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남자들이 운전하는 대형 승용차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A도 그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적 성공을 꿈꾸고, 이삼 년마다 한 번씩 정부를 바꿔가며 성욕을 해소하고 사랑을 즐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사람 역시 BMW나 르노 25를 타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는 중년 남자들처럼 언젠가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익명의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거리를 걷다가 상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원피스나 란제리를 보게 되면, 어느새 나는 그 사람과 만날 다음번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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