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메모

생각의 축제 / 이어령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 시장에서 쓰는 화폐가 별 의미가 없어져요.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거 있죠? 사랑보다도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것. 이것은 위험한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 가운데, 사랑은 언어로 숫자가 아닌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지요. GNP나 서열, 돈의 액수. 하지만 모든 것이 이렇게 숫자로 표현될수록 우리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사랑이나 마음이나 정의 같은 것의 귀중함을 더 깨닫게 됩니다. 참 역설적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슈펭글러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슈펭글러는 그의 저작 『서구의 몰락』에서 문명 쇠퇴기에는 숫자가 판을 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정신' 그 자체다. 그런데 이게 쇠퇴하면 숫자들이 나와서 이 언어로 사색하는 개념을 전부 숫자화해서 이 세상은 완전히 숫자들이 판을 지배한다.

 

 

 

이 숫자 속에서 우리는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숫자 속에 파묻혀버린 나, 매몰된 나. 숫자 속에 그 집단 속에 고유한 세상에 하나뿐인 지문, 나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소실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수라는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본래로 돌아가야 합니다. 숫자의 언어성을 회복하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의 세계, 아날로그의 세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숫자, 언어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숫자를 언어화하느냐 언어를 숫자화하느냐 즉, 셀 수 있는 세계를 셀 수 없는 세계로 나타내느냐, 셀 수 없는 세계를 셀 수 있는 세계로 나타내느냐. 이 숫자와 언어가 서로 오고가는 또 하나의 길. 숫자세계와 언어세계가 둘로 딱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또 뒤범벅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는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쥘 르나르. 『홍당무』로 유명한 그 소설가가 『자연의 이야기들』에 쓴 시 「개미와 새끼 자고새」에서 "개미는 숫자 3을 닮았다. / 여기도 3! 저기도 ! / 333333333.....이 끝도 없다"고 했지요.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도나 저커버그

 

 

우리나라에선 '빨간약'이 여초커뮤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을 표현하는 단어... 아니었나...?

그런데 이 책 보면 미국에선 인셀들이 많이들 쓰는 듯해서 읽는 내내 골때리고 웃겼음

그리고 내용이 너무 역해서 맨정신으로 읽기 정말 힘들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에 강력하게 끌린다는 점은 결코 레드필 커뮤니티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없다. 많은 정치, 사회운동이 고대의 역사, 문학, 신화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전유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0년, 나치가 이러한 문화적 상징을 차용해 서구 문화와 문명의 계승자임을 강력히 선언한 것이 바로 그 예다. 레드필 커뮤니티의 남성들 역시 디지털 시대에 맞서 이러한 전략을 적용했다. 이들은 고대 동상이나 기념물을 끝없이 복제와 변형이 가능한 이미지로 만들고 자신들의 이념을 투사하여 전 세계로 빠르게 전송하면서 고대 세계를 하나의 밈으로 만들었다.
이 남성들이 자기 관점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 분야가 고전만은 아니다. 이들은 영국, 독일, 러시아 특히 중세의 역사에도 관심이 있다. 또한 이들은 진화심리학, 철학, 생물학, 경제학에서 문장을 인용하고 또 작성한다. 그중에서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은 이들과 특별한 문화적 유의성을 가진 듯 보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오비디우스와 같은 작가들을 차용하면서 이들은 백인이 지적 권위의 수호자라는 관념을 영속화한다. 특히 이 권위가 여성과 유색인에 의해 위협을 받을 때면 더더욱 이러한 고전을 차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고대 세계, 그리고 고대 세계에 대한 연구가 미국 대학 내 강의실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기득권층'과 '사회정의 전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대학의 지적 정전에서 죽은 백인 남자들이 죽지도 않았고, 백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작가들로 대체되는 경향 속에서 레드필의 백인 남성들은 서구 문명의 문화적 유산의 수호자임을 자임한다.

 

 

 

레드필 커뮤니티의 남성들이 국가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준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정책에 영향을 준다고 '믿고', 이 믿음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들의 수 역시 늘어나고 있다. 서브 레딧인 'r/더 레드필'의 구독자는 23만 명으로 늘었다. 이 수치는 2016년 초에 집계된 13만 8000명에 비하면 대폭 증가한 수치다. 구독자가 나날이 증가하는 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젠더와 인종 기반 정책이 과학과 서구 전통에 의해 타당하다고 입증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자신감을 가진다. 그리고 이들은 트럼프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한 구성원들이 자신들과 의견을 같이한다고 믿는다.

 

 

<컬럼비아 스펙테이터>의 논평 내용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살롱>에 이르기까지 양쪽 진영에서 모두 조롱받았다. 이에 대한 대화는 레드필 포럼에서도 계속되었다. 서브 레딧 '게이머게이트'에서 한 이용자는 "트리거가 눌린 사회정의의 전사들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컬럼비아대학의 핵심 교육과정에서 제거했다"라며 논쟁을 공유했다. 이 포스트는 "사회정의의 전사들이 대학을 가장 허접한 이들과 영합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제일 징징거리고 안쓰럽고 멍청한 루저들 말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레드필 커뮤니티가 사랑하는 극우 웹사이트 '브라이트바트 뉴스' 역시 <캠퍼스의 소주한 눈송이들이 그리스신화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라는 포스트를 게시했다.

 

 

 

원본 없는 판타지 / 오혜진 외

 

 

여성 ‘동성연애’가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이런 관계는 독립적인 문제로 설정되기보다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한 ‘여학생 풍기’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성 ‘동성연애’는 그 자체로는 특별한 위험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현루영은 「여학생과 동성연애 문제」라는 글에서, ‘동성연애’는 오히려 성적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사춘기에 여학생들을 이성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줌으로써 순결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여학생들의 ‘동성연애’는 어디까지나 이성애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하고, 다만 이 단계에 고착될 위험 역시 있기 때문에 여학생을 지도하는 부모와 교사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1930년 『조선국세보고』에 따르면 조선반도 전체를 기준으로 15~19세 여성의 미혼율이 33.2퍼센트, 20~24세 여성 미혼율이 2.3퍼센트인 데 반해, 경성부의 15~19세 여성 미혼율은 69.6퍼센트, 20~24세 여성 미혼율은 20.6퍼센트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김수얼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난 1939년 10월, 경성부 사회과는 “결혼난 완화”를 위한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 최초로 “결혼표”를 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 조사의 대상이 된 것은 1933~39년에 경성부 내 공립・사립 고등여학교와 여자 실업학교 17개교를 졸업한 1만 2000명의 졸업생이었다.

 

 

 

근대 범죄학은 범죄 통계의 작성을 통해 여성의 강력 범죄율이 매우 낮으며 재범이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었다. 특히 살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절대다수는 남성으로, 동시대 세계 각국의 통계들은 여성이 저지른 살인 범죄가 남성 살인 범죄의 10퍼센트 수준에 불과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는 이와 매우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조선 여성의 살해율은 남성 살해율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높았으며, 특히 남편을 살해하는 범죄(“본부 살해”)가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본다면 김수얼은 1930년대 조선에 출현한 수많은 여성살해범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 “본부 살해”는 여타 흉악 범죄들과는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조혼을 비판하고 자유결혼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런 유형의 범죄가 조선의 봉건적인 가족제도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 여성들은 당시 범죄학이 전형적으로 그려 냈던 선천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구습에 속박되어 고통받다가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최후의 발작”으로 범행에 이른 “사회제도의 희생자”들로 이해됐다.
범행의 동기뿐 아니라 범행 방법 역시 이 여성범죄인들의 ‘정상성’을 보여 주는 근거로 해석됐다. ‘본부 살해’ 범죄를 저지른 여성들을 변호하는 다수의 글을 쓴 김정실은 범죄를 저지른 여성의 72퍼센트가 독약, 18퍼센트가 폭력을 사용했다는 범죄 통계에 주목했다. 이렇듯 여성살해범의 대부분이 약이나 양잿물 같은 독약을 선택한 것은 “비밀을 지키고 천성이 약한 체질을 가진” 여성에게는 “두들기고 찌르”는, 소위 “용기와 힘”이 필요한 남성적 범행 방식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으로 설명되었다. 그에 따르면 범행 방식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는 “본능적 또는 유전적 발로”이다. 이렇듯 ‘본부 살해’ 범죄는 범행 동기와 방식에서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따라서 범행을 저지른 여성들은 흉악 범죄에 연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상성’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이탈한 존재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명주완은 대학에서 경력을 쌓느라, 다른 신경정신과 동료들보다 비교적 늦게 개업의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개업을 했던 동료들 가운데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을 개업한 이는 없었는데, 이는 1930년대 후반에 아직 정신의학이 임상적으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얼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39년에 전체 관립・공립 병원의 ‘정신병자’ 이용률은 평균 0.11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으며,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산출했을 때의 수치는 더욱 낮았다. 정신질환을 “나병”과 같은 ‘저주받은 병’으로 여기는 대중의 편견으로 인해, 치료를 목적으로 근대적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수 자체가 매우 적었으며, 대부분의 신경질환은 내과에서 치료하고 있었기에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의 수익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명주완은 1970년대에 행한 회고에서, 당시 경제적 난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신경정신과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전문 병원의 개업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개업의 변을 밝힌 바 있다. 결국 그는 “시설비는 외도하다 써버린 셈 잡고, 하다 안 되면 보험회사 외무사원 노릇을 해서라도 입에 풀칠이야 못하겠느냐”라는 비장한 결심으로 전문 병원 개업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이런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명주완은 김수얼의 살인에 대한 논평을 쓰던 1939년이 되자, 개업 2년 만에 2층짜리 병원을 지을 만큼의 경제적 수익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가 조선복을 입고 지방 시찰을 했다거나, 재조선 일본인 사회의 여성지도자 쓰다 세츠코津田節子가 대외 활동 시에 조선복을 즐겨 입었다거나 하는 일화는 식민 통치자나 지도자가 내선일체를 솔선하는 취지에서 식민자의 호혜를 과시하는 퍼포먼스였다. 피식민자의 의복을 겹쳐 입은 식민자들은 본래의 민족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모범적인 실천가로서 자기를 재현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 문예봉과 김신재가 기모노로 성장盛裝하고 촬영한 스튜디오 컷이나 도쿄로 가는 길에 경성에 들른 만주국의 스타 리샹란李香蘭이 조선복을 입고 촬영한 모습은 식민지 출신 여배우의 신체를 ‘내선일체’나 ‘선만일여’鮮滿一如[‘조선과 만주는 하나와 같다’는 의미]와 같은 관제적 슬로건이 체화되는 장으로 삼고 제국을 향한 문화적 교량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때 리샹란의 크로스드레싱이 ‘대동아’의 여러 경계에 걸쳐 있는 존재로서 자기를 재현해 온 내력과 연관된다면, 기모노를 입은 문예봉은 ‘반도영화’[제국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영화를 지시하는 용어]의 상징으로서 자신이 구축해 온 기존의 페르소나와 단절되는 한편, 기모노가 함축해 온 ‘일본적인 것’으로서의 고유성과 ‘일본인의 경계’를 교란한다.

 

 

 

사실 조선인의 공간, 혹은 조선인과 공유하는 공간에서 조선복을 입어 보는 일본인들은 조선의 언어나 예법에 무지하더라도 특별한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조선복을 입어 보는 것은 문화의 고유성과 개개인의 사람됨에 대한 호기심, 더 나아가 상호 존중과 신뢰에서 우러난 행동으로 그려진다. 조선복을 입는다고 해도 ‘조선의 식민자’라는 그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일본인의 공간에서 조선인이 크로스드레싱을 수행하는 것은 피식민자로서의 민족적 이질성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과 연결될 때가 많다. 식민지 시기 일본이나 일본의 점령 지역에 이주한 조선 여성들은 일본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먼저 조선복과 조선어를 버리고 일본식 몸가짐과 예의작법을 터득해야 했다고 증언한다. 재일본 조선인들의 ‘황민화’를 추진한 협화協和 단체들은 ‘내선융화’와 ‘내선일체’를 위하여 조선 여성들이 조선복과 조선어를 버리고 기모노와 일본어를 취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당시, 외국 무대에 활발히 진출하는 여성가수들에 대해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쏟았고, 그 과정에서 여성가수들은 다양한 종류의 가십과 스캔들에 쉽게 노출됐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대한의 딸”, 혹은 “한국의 정부가 행하여 온 여러 가지의 외교 선전보다 더욱 많은 효과를 거두어”주는 국위선양의 상징으로 부각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래 문물에 지나치게 노출된 존재로 묘사됐다. 그중 유독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들의 연애와 결혼이었는데, 가령 김시스터즈의 경우 “부디 성공하여 결혼은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사람과 하라”라는 모친의 언급이 보도되었고, 일본에 진출한 펄시스터즈에 대해서는 인터뷰 중 “아무래도 한국 남자들이 훨씬 미덥”다는 멤버들의 답을 들은 후 “그래도 ‘한국 남성이 제일 좋다’고”라는 문구가 기사의 소제목으로 내걸렸다. 여성가수들이 해외에 진출해 활동하더라도, 그들을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할 수 있는 주체는 ‘한국 남성’이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MBC 10대 가수 청백전에서 가수왕으로 꼽히며 인기몰이를 하던 1969년, 부산에서 외국인들과 데이트를 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린 펄시스터즈는 자신들의 심경을 토로한 “고백적 수기”를 『주간경향』에 전재했다.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 이 글은 당대 사회가 여성연예인들을 어떤 식으로 순치馴致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다.

여러분의 ‘펄’은 순결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앞으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힘껏 노력하겠으니 계속 귀엽게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69년 5월 펄시스터즈 배인순, 배인숙

 

 

 

유흥 문화에 얽힌 성에 대한 낙인은 종종 냉전 체제의 심급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성을 불온한 것으로 재현하는 관습은 1950년대부터 이어지던 것으로, 해당 시기 소련의 “섹스간첩”의 존재가 과장되어 보도되는가 하면, 미국 공무원들 중 400여 명이 동성애를 하는 “변태 성욕자”이며, 그들은 정부를 태업시키기 위해 소련의 사주를 받고 잠복한 존재들이라는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또한 성매매 집결지를 가리키는 “적선지대”赤線地帶라는 말은 홍등가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른바 ‘빨갱이’와 연결되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정작 소련 측에서 ‘누드’가 자주 등장하는 “옐로영화”는 곧 혁명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부르주아사회”의 술책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고고클럽을 둘러싼 범죄가 중점적으로 조명되었고, 한 잡지에는 고고댄스가 젊은이들이 “울분을 발산하는 춤”이며, 세간의 오해와 달리 그 젊은이들이 대학생은 아닐 것이라는 내용의 좌담회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연예계・방송계에서는 “사치, 나약, 비탄조”를 추방할 것을 천명했고, 고고클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던 대중오락 잡지들은 “저속하고 과장된 광고와 퇴폐적이고 음란한 내용은” 일절 게재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지면에 싣기도 했다.

 

 

 

1963년, 김시스터즈와 이난영이 미국의 유명 쇼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CBS, 1948~71)의 무대에 함께 올랐다. 모녀와 조카로 구성된 이 네 명의 한국 여성들은, 이날 미국 관객들 앞에서 <노를 저어라, 마이클>Michael Row The Boat Ashore(1960)의 개사곡을 불렀다. 위 인용문은 이 날 이난영과 김시스터즈가 함께 부른 가사 일부이다. 즉 이 무대는 ‘아리랑’으로 상징되는 민족주의적 국위선양의 이미지와, ‘사케’로 상징되는 ‘순종적인 동양(일본) 여자’라는 서구 남성들의 판타지를 적극 활용한 것이었다. 이처럼 ‘무대’란, 그곳에 오른 공연 당사자가 선보이고 싶은 것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욕망이 모두 투영되는 장소다. 무대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연기하는 이들이 느꼈을 영광과 애수는, 동시에 무대 밖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포장되어 팔리는 상품이기도 했다.

 

 

 

이 일련의 ‘선군 찾기’ 영화들에서는 유의미한 여성인물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예컨대, 꽤 기이한 작품인 <남한산성>은 <광해, 왕이 된 남자>와는 사뭇 다른 역사관을 보여 주지만, 여성을 역사에서 제외시키는 경향에 있어서만큼은 대동소이하다. <남한산성>에는 대사를 가진 여성인물이 단 한 명 등장한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이 인물은 그나마도 남성인물들의 부성(=인간성)을 보여 주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며, 망가진 세계 이후를 암시하기 위한 미래의 이미지로 활용될 뿐이다. 여전히 역사의 주체가 특정한 남성으로만 상상될 때, 여성은 잃어버린 과거(<대장 김창수>의 ‘명성황후’)이거나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희생되는 매개(<대립군>의 궁녀 ‘덕이’)이거나 희망을 꿈꾸게 하는 미래(<남한산성>의 ‘나루’, <군함도>의 ‘소희’)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는 화석일 뿐이고, 현재의 매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하며, 미래는 절대로 도래하지 않는다.

 

 

 

기존 시리즈 및 동명 영화에서 라라는 ‘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걸 파워 시대의 전형적인 ‘아빠 딸’daddy’s girl이었다. 라라는 부유한 자산가이자 탐험가였던 아버지를 동경해 자신도 탐험가가 된다. 라라는 실종된 아버지가 남겨 놓은 기록과 정보를 따라 움직이며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아빠 딸’은 능력 및 자원의 유산과 계보를 아버지에게서 찾는다. 여기서 아버지는 딸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그녀를 길러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는 ‘선한’ 가부장이 된다. 이런 ‘선량한’ 역할 때문에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부상하는 가운데에서도 ‘아빠’는 딸과 그녀가 속한 미래를 소유하며 가부장으로서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한다. 딸은 선한 가부장을 인정하고 그의 서사를 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기존 가부장의 권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선한 가부장’과 ‘아빠 딸’의 공모 관계는 여성의 (복잡한) 역사와 자리를 지우고 가부장제를 재승인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편, 여성들 간의 관계에 집중한 서사는 지역, 국가, 인종, 종교,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차이에 따른 여성 범주 내의 위계 관계를 가시화하며 이런 질문들을 야기한다. 이를테면, ‘백인 여성영웅은 과연 누구를 구원하는가’의 문제. 일본계 미국 여성인 샘은 라라를 고대 유적지로 안내하는 토착 정보원이자 구원의 대상이다. 백인 여성이 영웅이 되기 위해, 즉 관습적인 권력 위계에 근거한 힘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인종적으로 아시아인인 여성을 구원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안일한 제국주의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걸 파워 담론은 애초부터 개인의 능력에 근거한 파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구/중산층/백인 중심성을 의심받아 왔다. 차이의 정치학을 사유하지 않은 채 ‘여성’을 단일하고 동질적인 범주로 인식한다면, 한 여성이 성장을 통해 파워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다른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일의 부당함은 간과된다.
게다가 서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샘은 일본의 첫 번째 여왕이었던 ‘히미코’의 영혼에 사로잡혀 그것에 지배당한다. ‘일본계’라는 샘의 종족적 계보는 그 자체로 취약함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을 발판으로, 라라는 샘을 구할 명분을 얻는다. 이성적・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샘의 상태는 라라를 제국의 약탈자가 아니라 히미코의 저주에 걸린 섬, 즉 전근대적이고 비논리적인 상태에 있는 아시아를 구하는 영웅으로 만든다. 그와 동시에, 게임 시간을 늘리고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하는 ‘숨겨진 보물찾기’ 미션 및 그와 관련된 정보의 습득은 ‘약탈’이 아니라 ‘방치된 보물’의 가치를 알아본 백인의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리부트>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주인공인 서사’가 ‘여성주의 서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별을 넘어, 인종주의 및 탈식민주의와 관련해 비판적으로 고려해야 할 질문들이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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