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가서 생각해야지! (221010-221107)

제목은... 요즘 자주 상기할 필요가 있는 말.
잔걱정이 많아져서 잠을 설칠 때가 많아졌는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내려놓고 살아야겠다.
어떤 방향으로 흐르건 간에 나는 잘 버텨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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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절대로 이걸 꼭 합격해야 하는 건 아니라면서 너무 부담 갖고 공부하지 말라는 얘기를 부모님이 새삼스럽게 꺼내셨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오히려 내년 2월 이후의 삶이 어떻게 나아가게 될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목표를 이룬다고 해서 딱히 인생이 재밌어진 적은 없었고, 오히려 막상 이루고 보면 별것 없고 시시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왠지... 뭔가를 포기하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낮잡아 보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길까봐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으로 시작한 일에 끝장을 보지 못하고 그만둘 수도 있단 생각이 드니까 그러고도 내가 떳떳하게 즐겁게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는 몇 번이고 도전을 해봐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고시 공부에 짧지만은 않았던 시간을 들인 것에는 후회가 없는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 대해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정말 부끄럽지만 한번도 실패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재수했던 것을 첫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결과적으론 바라던 대로 잘 풀렸다)... 정말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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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에 드디어 C와 A를 만나서 샤브샤브를 사먹었다. 새내기 때 조별과제 같이 한 이후로 처음 만난 거라 근황.. 졸업... 취준 얘기나 하다가 헤어질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간 덕질했던 장르에 대한 덕톡이 열띠게 벌어지고 있었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년 3월에 복학하고 나면 다같이 모여서 만화카페 가고 오닥후 투어도 한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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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가락칼국수...가 대체 뭔진 모르겠으나 논란의 여지가 상당해 보이는 이름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병원 가는 날이 돌아왔다.


여기 지나칠 때마다 별 생각 없었는데 조형고 21번 박병찬을 최애로 품고 나니까 저기로 최애를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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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들어가는 길에 반납 도서 구경하다가 표지가 끌려서 냉큼 집어온 만화책.
학교에 이런 순정만화st 책이 들어온 건 처음 봐서 신기했다. 그런데 내용은 일본 만화 특유의 그... 내가 진짜 싫어하는 스토리라 읽다 포기하고 바로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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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ee Grows in Brooklyn이 10달러에서 2달러대로 내려갔길래 냉큼 샀다. The Girl Who Fell Beneath the Sea도 가격이 내려가서 미리 사뒀다.
사실 최근에는 Slouching Towards Bethlehem이랑 A Pale Blue Dot이 더 끌리긴 했는데... 11월에 혼불 이북 사고 교통비랑 이것저것 빼고 나면 최대한 절약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쉬운 대로 저렴한 책부터 사기로 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으니 안 사고 그것들부터 읽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요새는 거의 읽을 거리들 찔끔찔끔 사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환율이 한동안은 내려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 뒤로부터는 무지성으로 아무 책이나 사제끼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건강하지 않은 취미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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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엔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감 따러 아침 일찍 나가셨다. 전날 잠 안 와서 1시 반 무렵에 간신히 눈 붙였다가 새벽 4시에 부모님 집 비우실 때 덩달아 깨버린 바람에... 엄청나게 피곤했다.



잠 깨려고 일부러 달달한 커피를 사먹었는데 맛없었고 졸음도 깨지 않았다.
9~10월에 나름 착실히 공부했고 실력이 조금이나마 붙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말문제만 몰아서 풀었는데 도서관 나서기 전에 짐 정리하면서 보니까 은근 열심히 푼 것처럼 보여서 찍음



음... 그리고 퍼블로그에서 키링 무료 행사를 한다길래 키링을 하나 주문했고 이날 배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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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지나랑 미나가 학교 앞에서 저녁 먹기로 했는데 시간만 괜찮으면 같이 먹자고 했다. 애들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피로도 싹 잊고 아침 일찌감치 등교했다.



지하열람실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조형물인데 멀찍이서 보곤 웬 두루마리 휴지가 저기 얹어져 있나 했다.

미나는 도서관에 올 때마다 늘 노트북실 33번에서 공부를 하는데(나는 요즘 지하 열람실이 답답해서 3층 가서 공부하고 있다), 고딩 때처럼 찾아가서 등짝을 한 대 갈겨 주고는 빨랑 밥 먹으러 가자고 징징거리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미나 모습이 정말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아.... 그냥 고시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에 로준하는 건 절대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음... 그래도 이번에 만났을 때는 중간고사가 끝나서인지 이전보다 안색이 많이 좋아져 보였다.



최근 학교에서 핫한 모미지식당에 처음 가봤고 미나에게서 쿼카를 잔뜩 선물받았다.
도서관에서 나가기 귀찮아서 맨날 생협 아니면 헬렌관에서만 밥을 먹었는데, 그 탓에 학교 주변 식당들도 요즘은 웨이팅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 난 이런 거 다 합정상수망원 인스타갬성 식당들만 하는 건 줄 알았지..



근데 음식이 되게 맛있고 정갈했다. 육회덮밥 먹을까 고민하다가 따끈따끈한 걸 먹고 싶어서 소고기가지덮밥을 주문했는데, 가지가 이렇게 역하지 않고 맛있기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삽시간에 싹싹 비워 먹어서 지나랑 미나에게 칭찬받았다(고딩때도 오봉도시락에서 치킨마요 말고 왕치킨마요 시켜서 다 먹으면 얘네가 꼭 칭찬해줬다..ㅋㅋㅋㅋㅋㅋㅋ)
셋 다 바빠서 밥만 먹고 바로 헤어진 건데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듯했다. 너무 고독하고... 힘들어서 누구라도 붙잡고 울적하다고 징징거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지나랑 미나를 만나니까 그런 생각도 싹 사라져서 남들 감정 쓰레기통 만드는 얘기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향인이라도... 확실히 사람들이랑 자주 만나고 부대껴야 정병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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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줄 알고 슬퍼했던 책갈피가 여기 끼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린이날 담임 선생님께서 반 애들에게 나눠주신 거였는데, 내 기억으론 애들마다 앞에 수식어를 다르게 붙여서 선물해 주셨었다. 나에게 '귀엽고 꽃보다 예쁜'이라는 표현을 써주신 분은 아마 이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ㅋㅋ. 무척 좋으신 분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 어찌 지내고 계실지 궁금해졌다.

+) <자기만의 방>을 고딩 때는 좀 지루하고 난해하다고 느꼈는데, 그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작품들도 몇 권 읽어보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고 나서 읽어보니 새롭게 와닿는 내용이 많았다. 다독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전에는 놓쳤던 것들을 새로이 깨우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리 엘리어트>를 열네살 때는 시시하다고 느꼈다가 스무살 때 펑펑 울면서 봤던 거랑 비슷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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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에 쏠쏠하게 사먹었던 생협 미니 도시락이 더는 안 들어온다고 툴툴댔는데 미나가 '그거... 아직 파는데...? 내가 열두시쯤 가면 있던데...?'라고 해서 깨달았다. 내가 밥 일찍 먹는답시고 매번 물건이 입고되기 전에 생협에 갔던 게 문제였다는 것을...
미니 비건 도시락은 나한테 양도 적당히 맞고 과일도 들어 있어서 레토르트 식품 사먹는 것보다 훨씬 더 영양가 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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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화인이 다시 오픈을 했다!!!!!!!
재수할 때만 한번 와보고 정작 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한 번도 못 간 채로 문을 닫아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더 널찍한 건물에 입점했다고 해서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사장님이 전직 킬러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지금도 무뚝뚝한 인상과 덤덤하게 친절하신 모습 그대로셔서ㅋㅋㅋㅋㅋ 내심 반가웠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총 여섯 가지의 아이스크림입니다...
아빠가 아이스크림 4개 세트로 두개 시켜먹자고 하셨는데 뜯어말리곤 아이스크림 3개짜리로 두개 시켜서 먹었다.
양이 많아서 한참 먹을 줄 알았지만... 금세 해치움.
처음 왔을 때도 얼그레이 아이스크림이랑 녹차 아이스크림을 가장 맛있게 먹었는데, 부모님도 이 두가지 맛을 가장 맛있게 드셨다.


엄마가 이번에 중간고사 생각보다 못 보셨다고(최근 심리학 학위 다시 따시는 중) 무척 상심해 계셨는데 여기 오셔서 기분전환을 하신 것 같아 흡족했다.
공부해야 돼서 얼른 부모님 데리고 신촌 한바퀴 쭉 돌고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즐거워했으나… 밤에 이태원 참사 속보를 보고 급격히 침울해졌다.
여전히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사건이다.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아닌 이상 함부로 입에 올려선 안될 것만 같아 더 뭐라고 적지는 못하겠지만, 모두의 가슴에 평생동안 상처로 남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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